밀양의 사람과 사람들(성공스토리)

05/09/2021

 {성공스토리}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책으로 나왔다."

대법관부터 사업가·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고향 향수 담아 재부밀양향우회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자체 제작비를 들여가며 1년간 '자랑스런 향우인'을 찾아 그들의 성공적인 삶과 고향에 대한 향수 등을 채록해 책으로 펴냈다.(2020년)

재부밀양향우회는 지난해 부산 서면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스토리 주인공 11명과 향우인들을 초청해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출판기념회를 겸한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북콘서트'를 열었다. 북콘스터에 앞서 현 회장은 박일호 밀양시장에게 발간된 책 100권을 전달했다. 책을 전달 받은 박 시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현영희 회장은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본인 스스로 밀양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고향을 위해 기여한 인사, 타 지역인들에게 '밀양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성공하거나 존경받는 인사를 발굴했다"라며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찾아 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엔 책자에 실린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해 존경 받고 있는 인물들이 참석했다. 김신 전 대법관, 김영기 화미주 인터내셔널 회장, 박만영 콜핑 대표이사 회장, 박정진 전 부산시의회 의원, 손기창 경창산업 명예회장, 배우 손숙, 작곡가 정풍송(부산MBC 재경사우회장), 임수복 (주)강림CSP 회장, 정문흠(주)태영 회장, 한백술 주식회사 중앙카프링 대표이사 회장, 황철수 전 가톨릭 부산교구장 등이 행사에 참석해 향우인들과 함께했다. 박일호 밀양시장과 향우인 등 200여 명도 참석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북콘스터에 앞서 현 회장은 박일호 밀양시장에게 발간된 책 100권을 전달했다. 책을 전달 받은 박 시장은 "재부밀양향우회는 매번 밀양시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밀양시가 하지 않은 부문까지 (재부밀양향우회가) 챙기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현재 밀양은 발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머지않아 향우인들이 고향을 자랑스러워하며 찾을 수 있도록 성장동력을 끊임없는 발굴 할것"이라고 화답했다.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는 박용연 발간위원장(전 부산 남구선관위 사무국장)과 박혜숙·신명숙·이양수 위원이 1년 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다. 박 위원장은 "전국 100만여 명의 밀양인을 대상으로 경제·문화·법조·종교·사회공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인생 이야기를 후배들과 공유할만한 내용이 있는 선배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수 천 만원에 달하는 발간 비용도 밀양향우회가 부담했다. 시현영희 회장은 북콘스트를 마무리하면서 "이 책을 통해 선배들의 땀 젖은 삶의 흔적을 공유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환기하고, 현재를 살아가고 고향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좌절 없는 생의 좌표를 제시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고향 밀양시와 부산시, 부신시교육청 등 관공서 도서관에 비치되고, 전국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김신 전 대법관 "청년들과도 대화 통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나는 나 자신만 위하고 잘난 체 하는 꼰대로 늙고 싶지 않다. 청년들과도 대화가 통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가능하면 청년들이 재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도 밀양 인들과 이 일을 함께 하는 바람이다."

내일동이 고향인 김 전 대법관은 부산고(29회)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3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된 후 부산고등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하고 2012년 대법관에 임명돼 6년 동안 근무했다. 2018년 8월 대법관 임기를 마칠 때까지 35년 6개월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다. 퇴임 후 현재까지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김영기 화미주 인터내셔널 회장 "다르게 생각하라, 간절하게 밀어붙여라"

1960년 9월 내이동 용평리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공식 학력은 중졸이다. 가정 형편으로 열일곱 살에 소년가장이 된 후에는 머슴살이(아내는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한다)부터 40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그는 현재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부산·울산·경남권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용산업 프랜차이즈 '화미주 인터내셔날 그룹'을 이끌고 있다. 70여 개 지점에 직원만 800명이 넘는다. 연간 고객 100만 명에 연매출 400억 원 전후의 알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박만영 콜핑 대표이사 회장 "오뚜기 인생, 불어터진 라면이 나의 힘"

"단장면 고레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이었던 1975년 부산에서 청춘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부산 서면에 있던 광덕물산이란 와이셔츠 만드는 회사에 미싱 기사로 일했는데 월급이 5000원이 채 안 되는 처지였다. 방 월세가 5000원이었으니 허투루 돈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기는커녕 제대로 밥도 챙겨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회사에 가면 식사가 나오기 때문에 잔업이며 야근을 그야말로 밥 먹듯 했다.

당시 그는 40년 후 여러 개 회사를 운영하며 연매출 3000억 원을 넘는 기업가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정진 전 부산시의원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삼랑진 출신인 박 전 의원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서울대학교 상대를 나왔다. "부를 쌓은 것도 아니고, 중년이 되어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의 꽃'이라는 국회의원이 되지도 못했다.

'여성 최초'란 타이틀을 여럿 얻었기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재산을 모으지도, 빛나는 명예를 얻지도 못했지만 자식들에게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자신 있게 '나처럼 살아라'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나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조언할 정도의 삶은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손기창 경창산업 명예회장 "아홉 번 넘어져도 일어나 걸은 정도(正道) 가야"

손 명예회장은 1923년 음력 8월 산내면 송백리 양송정에서 위로 딸 다섯을 두고 여섯 번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정말 귀한 자손이었다. 하지만 1930년 일곱 살 때 어머님을 잃었고, 1년 만에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가면서 외가에서 빌려주었던 논의 상당 부분을 떼어 가버렸다. 그 바람에 하루아침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경창산업을 있게 했다.

◇배우 손숙 "죽을 때까지 연극 무대에 서겠다"

산외면 다죽리 죽서마을로 8촌까지 모여 사는 안동 손씨 집성촌에 태어났다. 천석꾼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으나 그가 어릴 적엔 천석은 아니라도 체면치레를 할 만큼의 땅은 물론, 안채와 사랑채 등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하인들도 여럿 있었다. 문학소녀이던 그는 고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서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하게 됐다. 이 작품은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갑자기 모든 게 연극으로 쏠렸다.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임수복 (주)강림CSP 회장 "고개는 숙이고 남의 말은 들어라"

"1947년 삼문동에서 4남1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있는 조선소에서 엔지니어셨다. 8·15 광복을 맞아 아버지는 그동안 벌어둔 돈을 모두 가지고 귀국하셨다. 처음에는 풍족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찹쌀떡 공장도 만들고 과자 공장도 지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문흠 (주)태영 회장 "꿈은 용기를 낳고, 용기는 기회를 낳는다"

"밀양에서 나고 고등학교까지 밀양에서 마친 밀양 사람이다. 고향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밀양에 애착이 많다. 사업을 위해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누구를 만나든 밀양 사람임을 알리고, 밀양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 삶에는 세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어쩌면 모

든 것이 달라졌고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백술 (주)중앙카프링 회장 "유능한 자는 행동하고, 무능한 자는 설명한다"

1940년 무안면 신법리에서 태어난 한 회장은 결혼 후 당숙의 권유로 부산에 내려와 당숙내의 가내수공업을 돕다 1977년 자동차 부품회사인 ㈜중앙카프링을 창립했다. 중앙카프링은 기계부품 전문 기업으로 연 매출은 100억 원 대를 올리고 있다. 1980년대 경운기·버스 부품 쪽으로 회사를 특화하고, 동력 기계에 주로 쓰이는 기계부품 '카플링'을 국산화하면서 탄탄한 중소기업을 일궜다.

◇황철수 전 가톨릭 부산교구장 "안식년에 택시 몰던 '섬기는 사목자'"

1953년 부북면 지동에서 2남2녀 중 둘째, 장남으로 태어난 황 전 교구장의 집안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뿌리 깊은 교우 집안이다. 1983년 2월에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사제품을 받고 부산 망미동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1년간 사목활동을 한 후 3년간 망미 본당 주임신부를 맡았다. 이후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 전하 본당 주임신부, 메리놀병원 관리부장, 선교사 목국장, 사무처장을 지내고 2006년 1월 부산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돼 2006년 2월 남천 주교좌성당에서 정명조 주교의 주례로 주교 서품식을 받았다. *출처|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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